1-1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 죽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생을 살면서 내 자신과 영원 사이엔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았다. 언제나 황량하고 캄캄한 바람만이 내 등 뒤로 불고 있었다. 삶이 시작될 때 나는 이렇게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지만, 그때 난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것은 내가 남 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점점 잃어갔다는 것과, 가져본 적도 없는 것들을 점점 더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잃고 얻었다는 자각은 내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게 했다. 내 삶의 시점에는 얼굴도 한번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있었고, 내 삶의 끝에는 그 누구도 존재치 않았다. 나와 이 세상의 컴컴한 방 사이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평생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았고, 그런 상실감은 나를 쉽게 상처받고, 냉소적이며,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이걸 깨닫고 나니 슬픔과 부끄러움, 그리고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우리 엄마가 나같이 연약한 어린 아이를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자, 아빠가 날 맡기러 데려간 곳은 세탁을 맡기는 여자의 집이었다.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가서 아빠는 두 보따리가 서로 다른 거라고 당부했을지도 모르겠다. 보따리 중에 하나는 어린아이였다. 이 세상에 남겨진 아빠의 유일한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결혼한 여자에게 태어난 아이인 것만은 확실했다. 다른 보따리는 때묻은 옷가지들이었다. 아빠는 두 보따리 중에 하나를 더 부드럽게 다뤘을 것이다. 둘 중에 한 보따리에 대해서만 유독 세심하게 설명했을 것이다. 둘 중에 한 보따리를 더 세심하게 다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빠가 그렇게 당부한 보따리가 둘 중에 어떤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허영심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겉치장은 아빠에게 지극히 중요했다. 난 안다. 먼지 묻은 옷이 아빠에게 짐이었던 것처럼 나도 아빠에게 그저 짐이었다는 걸. 난 안다. 아빠가 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걸, 그리고 혼자 빨래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난 안다.
아빠는 정말 작은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았다. 가난했지만, 그건 아빠가 선했기 때문이 아니다. 부자가 될 만큼 나쁜 짓을 그리 많이 하지 않은 것뿐이다.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걸어 내려오며 아빠는 한 손엔 빨래 보따리를, 다른 손엔 자기 자식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여자에게 두 손에 붙들고 있던 모두를 건네주었다. 그 여자는 아빠의 친척도, 엄마의 친척도 아니었다. 이름은 유니스 폴이었고, 그녀에겐 이미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막내는 아직 갓난쟁이였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도 물릴 수 있는 젖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써서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그녀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바다와 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짜증을 내고 스스로를 달랠 수 없을 때, 그녀는 나를 낡은 옷 더미에 기대어 있게도 하고, 나무그늘 아래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나는 지칠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유니스가 나쁜 사람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다른 자식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나를 대해줬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기 자식들에게 친절했다는 뜻도 아니다. 이곳에선 야만적인 게 일상이었고, 누구도 자신의 잔인함을 숨기지 않았다. 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을 그리워했다. 나는 마치 누가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봤다. 처음에 유니스는 농담으로 누구를 찾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습관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내가 귀신을 본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코 귀신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어떤 얼굴을 찾고 있었다. 내가 영원히 산다고 해도 볼 수 없는 그 얼굴을.
아빠가 나를 맡겨놓긴 했지만 난 이 여자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일부러 나에게 잘 해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잘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녀는 잘 해준다는 게 뭔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젖을 빨지 않을 때면, 그녀는 아직 이빨이 나지 않은 내게 체로 거른 부드러운 음식을 먹였다. 이빨이 나고 내가 처음 한 일은 그녀가 나를 먹일 때, 음식을 그녀의 손에 쏟아버린 것이다. 낮은 신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놀라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탄식의 소리였다. 그녀는 내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저지른 배은망덕한 행동이었다. 이 일로 우리가 서로를 알고 지내는 시간 동안, 그녀는 내게 벽을 쌓고 말았다.
네 살이 되기까지 나는 말을 못했다. 이것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누구도 이 일로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단지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아빠를 볼 수 있었던 건 2주일에 한번씩 세탁된 옷을 가지로 올 때였다. 나는 결코 아빠가 나를 보러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세탁된 옷을 가지러 온다고만 생각했다. 아빠가 올 때면 나는 밖으로 불려 나갔다. 아빠는 내게 안부를 묻곤 했지만, 그저 형식적인 말이었다. 나를 쓰다듬어 주지도, 내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내 눈을 한번 바라봐주면 어때서! 유니스는 아빠의 옷을 빨고, 다리고, 개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옷가지들은 무명천 두 장으로 선물처럼 포장되어, 아빠가 와서 가져갈 때까지 그 집에 하나 밖에 없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빠는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래서 평소처럼 나타나지 않았을 때, 난 금방 알아채고 물어보았다. “아빠가 왜 안 오죠?
나는 영어로 물었다. 프랑스어 방언이나 영어 방언이 아닌, 그냥 영어로. 말문을 연건 둘째치고,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영어로 말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유니스와 그녀의 자식들은 프랑스어 방언인 도미니카 어를 사용했다. 아빠도 내게 얘기 할 때 그 말을 썼는데,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말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내 말이 트였다는 사실과 왜 아빠가 오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놀랐을 뿐이었다. 내가 난생 처음 뱉은 말이 내가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었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내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좋든 나쁘든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내 인생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통의 근원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네 살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세상은 숯으로 그린 여러 개의 선들이 합쳐져 있는 그림이었다. 아빠가 옷을 가지러 올 때, 내가 바라본 건 내가 사는 집 앞에 있는 길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에서 아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 일을 마친 후엔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아빠가 그 길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저 오솔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빠가 내 눈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가 우리 아빠인지, 아니면 완전 다른 사람이 사라져 버리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모습의 아빠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난 괜찮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말을 하지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