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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1)

by rainbowbrite 2025. 2. 1.

   제 기억 가장 먼 곳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마 제가 대여섯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희 가족은 양평 읍내에 있는 주택 2층에 세를 들어 살았었거든요. 주변엔 논밭이 있었고, 집 바로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요. 이층 집이었는데 2층은 옥탑방처럼 주거 공간은 전체 건물의 반 정도였고, 나머지는 마치 옥상 같은 넓은 공간이었어요. 제 기억으론 정말 광활한 넓이였는데, 그때 아버지가 찍으신 사진으로 보면 정말 좁은 곳이더라고요. 거기서 동생과 놀았던 기억, 엄마가 찬물로 얼굴을 씻길 때 막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날 낮이었는데, 어떤 아저씨 둘이서 아버지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2층집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왔어요.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분명 대낮이었는데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까지 술을 드시고 온 거였어요. 술 냄새가 났는지, 그때 엄마는 어떻게 반응을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버지 몸이 축 늘어져서 부축을 받아 계단을 오르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해요. 

   그리고 아버지의 직장 동료로 추정되는 두 분중 한 분이 저와 동생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줬습니다. 그때 100원이면 과자 한 봉지를 사고 풍선껌 하나를 덤으로 받던 시절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불쌍해 보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 장면이 제 기억 가장 먼 곳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에요. 제가 대여섯살 때쯤이니까 아버지는 서른 즈음이셨네요. 지금 저보다 10살 넘게 어린 아버지셨어요. 그때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괴로워서 낮부터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술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까지 마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뭔가 힘들어서 뭔가 잊고 싶어서, 또는 뭔가를 외면하고 싶어서 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그때 당시 아버지에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제가 좀 이라도 철이 들었으면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 얘기를 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이젠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래도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마음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몇십 년만 지나도 이 세상엔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도, 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이런 사람이 살았었다고, 이런 삶을 살았었다고 남겨 놓고 싶어요. 

 

아버지의 아들 호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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