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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어머니의 자서전10

2-2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14살이 되었을 때, 루소(Roseau)와 마호(Mahaut) 중간에 있는 이 작은 도시 마사크레(Massacre)는 내게 너무 지루한 곳이 돼버렸다. 분명 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필요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 배워나갔다. 오래 전부터 스스로의 본능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면, 문득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 인생관은 한계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인생 자체는 이미 별볼일 없고 하찮은 것이었다. 또한, 나는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만난 적이 없다고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로마인, 갈리아인, 색슨족, 영국인들처럼 내가 만.. 2014. 11. 4.
2-1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2-1 아빠 집에서 옆 동네에 있는 학교까지 가는 머나먼 길을 속속들이 다 알게 돼도 어쩔 수 없이 다시 까먹을 수 밖에 없었다. 가는데 5마일, 오는데 5마일이나 걸어야 하는 이 길은 모든 아이들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아이가 없었다. 우리는 항상 무리를 지어 다녔다. 1년 내내 같이 다니는 아이라 봐야 열댓 명이 넘지 않았다. 물론 남자아이들이 더 많았다. 우리는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서로를 신뢰하지도 않았다. 부모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습이 좋은 예절이라도 되는 양 나도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 ‘이 사람들을 절대 믿어선 안 된다.’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다른 부모들도 똑같은 .. 2014. 10. 27.
1-8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빠의 딸인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친 아빠의 모습은 어떤 걸까? 아빠는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경찰관은 아니었다. 자기가 가진 지위를 이용해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자기 가족이 사는 집에서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때는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었다. 아빠가 나타나지 않을 때면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기다리곤 했다. 사람들은 아빠를 기다리며 가끔은 마당 안쪽에 있는 돌 위에 앉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문을 열고 들락날락 거리기도 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 때문에 아빠의 아내는 항상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그녀는 무례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투덜거렸는데,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그.. 2014. 8. 26.
1-7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아빠의 아내는 내가 죽기를 바랐다. 사고가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슬픔에 잠긴 자기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내가 살든지 죽든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보이자 그녀는 직접 그 일을 감행하려 했다. 그녀는 말린 열매와 윤이 나는 나무, 바다에서 가져온 돌맹이와 조개로 장식된 목걸이를 만들어 내게 선물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어린 아이가 보기에도 너무 아름다웠다. 어린 아이, 진짜 어린 아이였다면, 너무 갖고 싶어서 마음이 끌리고, 당장이라도 목에 걸어보고 싶을 만한 목걸이였다. 난 진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리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는 내 작은 방으로 그 목걸이를 가져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지.. 2014. 8. 26.
1-6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음산한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아빠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침이 밝았다. 나는 거짓 천국에서 잠이 깼다. 거짓 천국에서 나는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이곳은 내가 항상 알고 있던 모습과 똑같았다. 어떤 것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 겸손함과 거만함이 공존하고, 생명이 충만함과 동시에 죽음도 넘쳐나는 곳이었다. 어떤 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빠의 아내는 내게 혼자 씻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녀에게서 다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외모와 내게 풍기는 냄새는 나를 모욕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그때 나는 지금의 내 방식대로 반응했다. 어떤 것이든 미워하라고 강요 받은 것을 난 사랑했다, 그것.. 2014. 8. 26.
1-5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아빠는 교도관 제복을 입고 나를 데리러 왔다. 이런 복장으로 나타난 건 아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경찰로 근무하던 세인트 조셉 St. Joseph 에서 로조 Roseau 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나는 아빠가 올 거라는 얘기를 미리 들었다. 하지만 기대하진 않았다. 학교에서 내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 끝자락에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를 보고 놀랐지만, 모른 척하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토록 내가 아빠를 기다렸던 이유는 아빠의 재혼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빨래거리를 가지고 내가 사는 집으로 오지 않은 것도 재혼 때문이었다. 재혼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재혼한다는 게.. 2014. 8. 15.
1-4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내 기억으론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날은 편지 쓰는 법을 배웠다. 보통 편지는 총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보내는 사람의 주소, 날짜, 받는 사람의 주소, 인사말이나 안부, 편지의 본문, 마무리 짓는 말이 그것이다. 나처럼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자에게 편지 쓸 기회가 없다는 건 뻔한 일이다. 실수를 하면 맞기도 하고 폭언을 듣기도 했지만, 편지 쓰는 법을 배우고 실제로 써보면서 느꼈던 만족감은 실로 엄청났다. 그때는 편지를 쓴 사람의 불평이나 관점, 즐거움이 뭔지 전혀 관심이 없어도 그 편지를 베껴 쓰는 것이 그렇게 화나는 일은 아니었다. 너무 어렸던 나는 허영심이 칼처럼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나만의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곱 살이었던 나의 눈에 비친.. 2014. 8. 15.
1-3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나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빠의 바람이었다. 그때는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유니스의 딸들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학교에 보내달라는 건 뜻밖의 요구사항이었다. 난 아빠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그런 요구를 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나 같은 애는 결국 학교에 가봤자 별볼일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하면서 내게 무엇이 없는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내게 비참함 만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집을 떠나 저 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내 치마와 블라우스의 감촉을 정확히 기억한다. 촌스러웠지만 그래도 새 거였다. 초록색 치마와 베이지.. 2014. 7. 30.
1-2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어느 날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접시 하나를 깨뜨렸다. 유니스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단 하나뿐인 본 차이나 접시였다. “미안해요.”라는 말이 차마 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녀가 접시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 슬픔은 처절했고, 감당치 못할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그녀는 두터운 뱃살을 부여잡으며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가슴을 내리치기도 했다.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니 신화나 동화에서 나올 듯한 수맥이 터져 흐르는 것 같았다. 어렸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 접시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걸 눈치채고, 절대 만지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했었다. 나는 .. 2014.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