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ns/어머니의 자서전

2-2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by rainbowbrite 2014. 11. 4.


   14살이 되었을 때, 루소(Roseau)와 마호(Mahaut) 중간에 있는 이 작은 도시 마사크레(Massacre)는 내게 너무 지루한 곳이 돼버렸다. 분명 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필요가 있을 때마다 스스로 배워나갔다. 오래 전부터 스스로의 본능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면, 문득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 인생관은 한계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인생 자체는 이미 별볼일 없고 하찮은 것이었다.

   또한, 나는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만난 적이 없다고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로마인, 갈리아인, 색슨족, 영국인들처럼 내가 만난 적이 없는 이 사람들이 가진 역사의 이면에는 사악한 의도가 있다. 그 사악함은 나에게 굴욕감을 주었고, 나를 초라하고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게 향한 이런 사악함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난 공허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말에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네 자신의 이름과 행위에서 풍기는 향기는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리고 지치거나 피곤케 하지 않는다. 영감을 주고 새롭게 한다.’ 그리고 난 누구도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심판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자기 자신의 죄를 낱낱이 밝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자백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 벌은 침묵이라는 쇠창살 안에 영원히 갇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은 임명된 관원이 범죄의 내용과 악행의 목록을 어눌한 문장으로, 혹은 완벽한 문장으로 반복해 말할 때만 잠시나마 깨질 수 있다.

   처음으로 루소에 간 날은 15살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아빠가 아는 어떤 남자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라바트(LaBatte)씨의 집이었다. 자크 라바트, 쓰고 달콤한 어두운 밤이면 나는 그를 잭이라고 불렀다. 그도 역시 원칙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 때문에 놀라거나 실망하지도 않았고, 좋든 나쁘든 그에 대한 인상이 바뀌지도 않았다. 그와 우리 아빠는 금전관계로 얽혀 서로를 알고 지낸 사이였다. 서로를 친구라고 불렀지만, 그들이 덧없이 쌓아 올린 그 허술한 우정의 토대는 세상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 세상 안에 있는 어떠한 물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 슬픔을 자아낼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루소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자기 모습을 감추고 진짜 모습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했다. 사람들은 루소를 도시라고 부르는 대신 수도라고 불렀다. 도미니카의 수도. 이 도시의 기반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도 가끔 자연의 공격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허리케인이 불기도 했고 바다와 하늘이 갑자기 자를 바꾼 것처럼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루소는 절대 도시라고 할 수 없었다. 그곳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도 아니었고, 사람들 간의 생각이 교류되거나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는 곳도 아니었다. 음모를 꾸미거나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 고상한 열망조차 갖지 못한, 도시 축에도 끼지 못하는 곳이었다. 자기 잘못이든 아니면 남의 잘못이든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을 위한 간이역의 역할을 하는 전초기지 정도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루소와 같은 곳이 많았다. 절망의 전초기지로 정복자에게나 혹은 수탈을 당한 사람에게나 이곳은 동일하게 절망의 중심지였다. 이곳의 풍경은 억지로 밀려 들어와 사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곳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했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다닥다닥 밀집해있는 집들 사이에 있었다. 작고 삐뚤삐뚤한 집들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었고,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처럼 강렬한 색체로 칠해져 있었다. 가끔은 칠이 없는 집도 있었는데, 벌거벗은 듯한 나무가 겉으로 드러나 밝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피곤에 찌들어 피부가 번들거렸고, 행복을 느낄 때조차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역사란 거대하고 어두운 방이었기에 그들은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잔잔한 바람이 불기도 했고, 가끔은 나무가 고요하게 멈춰서기도 했다. 지는 해가 있었고 밝아오는 여명이 있었다. 밤에만 피어나는 하얀 백함이 달콤하고 역겨운 냄새와 동물 같은 뭔가가 부패하면서 풍기는 달콤하고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다. 이런 아름다움을 처음 봤을 때는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덕분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새로우면서도 생소하고, 익숙치 않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왜 기쁨을 느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이 모든 것들이 내 일부가 되고, 내 일상이 되었을 때, 이 기쁨의 감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새로움 느끼고, 내 안에서 샘솟는 기쁨을 느끼기를 갈망했다. 희망으로 가득 차고 다시 젊어지기를 갈망했다 지금도 난 내가 다시 새로워지기를 원한다. 다시 젊음을 느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갈망뿐, 다시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순 없다.

   아빠가 자기 아내가 있는 집에서 나를 내보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난 아빠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빠가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지 몰랐고,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싶은지, 나로부터 뭘 알고 싶은지 몰랐다. 나를 루소로 보내는 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도달했다. 아빠는 내가 학교를 계속 가길 원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되길 원했다. 자기 딸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게도 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꿈이 있다고 해도 그게 뭔지 몰랐을 것이다. 집안 분위기에 대해 아빠가 어떻게 느끼는지 난 몰랐다. 아빠는 내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보고도 뭐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사업으로 아는 이 남자의 집에 나를 떨어뜨려 놓고, 그 남자와 그의 아내의 손에 나를 맡긴 채 떠나버렸다. 나는 하숙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방식대로 값을 지불했다. 내 방과 식사를 제공받는 대신 집안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스르지 않았다. 거스를 수 없었고 거스르길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겉으로 거스를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후에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타는 듯한 오후였다. 그때 그들은 나에게 아저씨 아주머니였다. 나는 혼자 있는 아주머니를 먼저 만났다. 아저씨는 다른 방에 혼자 있었다. 아저씨는 그 방에 돈을 보관했고 끊임없이 돈을 세는 걸 좋아했다. 이 세상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이 다 그 방에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라바트 여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멋진 자기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대문 뒤로는 멋지고 깔끔한 정원이 꽃으로 가득 차있었고, 정원석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그녀의 좌우로 펼쳐진 수풀에는 타는 듯한 여름임에도 파란색 꽃이 피어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꽃과 꽃잎으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금방 알아챌 수 있었던 건 마호 사람들은 교회에 갈 때 이런 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드레스는 닳지도 않았고 깨끗했지만, 재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느슨하고 몸에 잘 맞지 않았다. 자기 몸엔 이제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했다. 아빠와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내게 말을 걸면서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녀를 바라봤다. 서로를 재보기 위한 눈빛은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내 눈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왜 그 반대의 감정이 아닌 동정심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에게 내가 항상 느꼈던 감정은 동정심이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로 갖고 싶은 걸 가진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라바트씨와 정말 결혼하고 싶어했다. 매일 빨래하러 오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간절히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은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게 됐다. 그건 단지여자에게 결혼 외에 선택할 게 있긴 한 건가? 아주머니가 왜 결혼하고 싶어했는지는 듣지 못했는데, 내 추측은 이렇다. 아저씨는 힘센 몸을 가졌고, 그 몸과 힘센 손, 입술에 끌렸던 것이다. 아저씨의 입술은 아주머니에게 키스할 때마다 입술을 완전히 덮어버릴 만큼 크고 넓었다. 내게 키스할 때도 내 입술을 집어삼킬 듯 했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 아주머니는 헤픈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된 건 아저씨를 만난 이후였다.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닳고 달게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아저씨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도 했다. 사내아이들이었다면, 아저씨의 성을 따랐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다. 라바트 여사는 방법을 하나 고안했는데, 음식에 자기 생리혈로 만든 소스를 넣어 아저씨에게 먹인 것이다. 그 방법으로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붙어있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시간이 흘러 이런 주술은 사라졌고 말았는데, 더는 효과도 없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달려들었다. 자기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자기 다리 사이에 달고 다니는 무기의 힘으로 아주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아주머니를 닳아 빠지게 했다. 그녀의 머리는 회색이다.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모습이 그렇듯, 머릿결도 활력을 잃었고 생명력 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손도 그저 양 옆에 힘없이 달려있을 뿐이었다. 그녀도 젊었을 땐 아름다웠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젊은 시절엔 정말 미인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이미 패배감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패배는 아름답지 않다. 비참하지 않더라도 아름답진 않다. 그때 나는 어렸다. 그래서 잘 몰랐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고 동정심을 느꼈을 때, 난 역겨움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절대 이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흐르는 세월과 욕망의 무게가 날 노리개로 삼을 수 없었다. 어려도 너무 어렸던 나는 강한 확신을 느꼈다. 기운이 넘쳐났고 언제나 그 상태로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기분이 솟아났고, 언제나 그 상태로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즈음에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너무 작아졌고, 가슴이 부풀어올라 블라우스를 짓눌렀다. 길게 자란 머릿결이 부드럽게 어깨를 스치면 몸이 안쪽부터 부르르 떨려왔다. 다리는 흥분돼 있었고, 단내가 나는 끈적한 것이 그 사이를 적셨다.

아주머니는 나를 좋아했다. 아주머니도 나를 좋아했고, 그녀의 남편도 나를 좋아했다. 자기 남편이 날 좋아하는 건 그녀에게 기쁜 일이었다. 아저씨가 돈 세는 방에서 나와 아빠와 나에게 인사하러 나올 때까지, 라바트 여사는 나에게 접처럼 편하게 있으라거나, 자기를 엄마처럼 생각하라거나, 자기가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거나, 그런 얘기를 내게 했다. 잘 모르는 여자가 그런 말들을 한다는 게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는 알 리가 없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나는 속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진심이었다는 건 알았다. 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한 얘기였다. 나는 그녀의 예전 모습이 너무 좋았다. 더 이상 상과 패배 때문에 혼자 외로움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에 내가 함께 있는 걸 고마워했다. 아저씨는 나를 처음 보고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버지가 누굴 데려와 돌봐달라고 하든 그에게는 큰 상관이 없었다. 아저씨는 아빠의 은밀한 탐욕을 좋아했다. 아빠는 아저씨 안에 있는 단순한 탐욕을 좋아했다. 그들은 결이 같은 사람들이었다. 누구든 먼저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이미 그랬을 수도 있었다. 라바트 시는 이미 아빠보다 더 큰 부자였다. 더 많은 연줄을 가지고 있었고, 카리브 여성과 사랑 때문에 결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