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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어머니의 자서전

1-8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by rainbowbrite 2014. 8. 26.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빠의 딸인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친 아빠의 모습은 어떤 걸까? 아빠는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경찰관은 아니었다. 자기가 가진 지위를 이용해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자기 가족이 사는 집에서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때는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었다. 아빠가 나타나지 않을 때면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기다리곤 했다. 사람들은 아빠를 기다리며 가끔은 마당 안쪽에 있는 돌 위에 앉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문을 열고 들락날락 거리기도 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 때문에 아빠의 아내는 항상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그녀는 무례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투덜거렸는데,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그 무례함이 좀 과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아빠를 기다렸다. 서서 잠들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 잠들기도 했다. 파리가 날아와서 쩍 벌어진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핥아먹기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돌아갔다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음날 다시 찾아오곤 했다. 가끔은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빠는 자기 행동이 빚은 결과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항상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처음에 나는 아빠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는 당연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빠의 행동은 면밀히 계산된 것이었다. 그건 고통을 주는 아빠의 방식이었다. 아빠도 고통이 끝없이 계속되는 섬에 살며, 그 생활방식의 속한 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아빠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을 때, 아빠는 이미 자기 삶을 보여주는 가면을 얼굴에 쓰는 데 익숙했다. 피부는 탱탱했고, 작은 눈은 마치 머리 안쪽으로 깊게 파인 것 같았다. 얼굴만 봐서 아빠 마음을 눈치채는 건 불가능했다. 웃을 때 입술은 양 옆으로 쭉 찢어졌다. 신뢰가 가는 모습이었다. 아빠의 옷은 언제나 다림질이 잘 돼있고 깔끔해서 얼룩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는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을 싫어했다. 낯선 사람이나 아빠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오면, 식사도 같이 하려 하지 않았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요즘도 이렇게 자문해본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빠는 키가 켰고, 붉은 머릿결과 회색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낳다가 죽고, 아빠와 결혼한 이 여자는 어떤 도둑의 외동딸이었다. 자기 땅에서 바나나, 커피, 코코아를 기르던 사람이었다 (작물들은 수출업을 하는 유럽사람들에게 팔려나갔다.) 그녀는 아빠에게 빈손으로 왔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 아빠에게 많은 연줄을 대주었다. 땅도 같이 사고,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그 이익을 나누기도 했다. 다투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친구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에게 친밀한 친구란 존재치 않았다. 한때 공범자였던 이 사람의 딸을 아빠가 언제부터 만났는지 나는 잘 모른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날일 수도 있고, 하늘에서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어두컴컴한 밤이었을 수도 있다. 커다란 태양이 하늘 위에 떠있는 날이었을 수도 있고, 너무 암울해서 삶 자체가 슬프게 느껴지는 날이었을 수도 있다.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 목소리는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녀의 목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도록 만들어 주는 언어가 있는지, 그래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지, 아직도 난 모르겠다. 

그때 아빠는 분명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진 않았다. 난 아빠가 누구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빠는 내가 계속 학교에 나가길 바랬다. 간절히 바랐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빠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시기에도 내가 학교에 계속 나가길 바랐다. 나는 열세 살이 넘어서도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면 뭘 해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학교를 간다는 건 내게 큰 희생이었다. 왜냐하면 아빠의 아내가 자주 지적하는 것처럼,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게 읽을 책을 주었다. 존 웨슬리의 삶에 대한 책도 줬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영적인 격변과 경건함으로 가득한 이 사람의 삶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아빠는 감리교 신자가 되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도둑질을 더 많이 하면할수록, 돈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아빠는 교회에 더 자주 나갔다. 들어본 적 없는 조합은 아니었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아빠가 얼굴에 쓴 가면은 더욱 견고해졌다. 나는 이제 더는 아빠의 옛날 모습, 나와 같이 살겠다고 데리러 오기 전 아빠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엄마와 아빠는 둘 다 내게 신비로운 존재였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존재의 죽음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끊임없이 보는 존재의 미로 같은 삶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알게 된 세상은 위험과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행동하지 않았다. 아빠의 아내가 내게 가하는 위협에 대해서 나는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녀 생각에 나의 존재가 그녀에게 가하게 될 위협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집이면서도 아빠의 집인 이곳에서 나는 미안쩍은 모습으로 내 자신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실 미안한 감정이 전혀 없었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난 용서해달라고 비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걸이만큼은 내 무기였다. 그녀의 시선을 돌리는 방법이었고, 내가 가련하고 무지한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죽음을 바라진 않았다. 그저 나를 홀로 내버려두길 바랐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어디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정말이지 신경이 쓰였다. 아무에게도 동정이란 걸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아빠에게만큼은. 그녀가 질투할 게 뻔했으니까. 나는 학교에서도 이런 경건함을 유지했다. 선생님은 내가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나는 내 몸과 다른 사람의 몸에 어떠한 관심도 보일 것 같지 않은 아이였다. 이런 소모적인 요구는 내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요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이른 아침 깨어나 침대 밖으로 걸어나올 때부터 내 자신을 어두운 밤으로 감쌀 때까지, 나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이런 가식적인 행위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진짜 내 모습이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밤이 되자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집 안팎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인지 맞혀보기도 하고,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기도 했다. 검은 물체가 여러 개의 리본처럼 땅에 떨어진 채로 십자가 모양으로 움직이며 꽥꽥 소리를 내는 게 박쥐의 소리인지 아니면 박쥐의 모습을 한 사람의 소리인지, 빛이 없는 공간에서 날개가 부딪히는 소리가 새의 소리인지 아니면 새의 모습을 한 사람의 소리인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깊은 밤의 정적이 이미 오랜 시간 집을 감싸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빠가 들어왔다. 살며시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마당으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손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다시 문을 닫았다. 빗장을 안전하게 걸어 잠그고, 집 안의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는 늦게 들어오는 날엔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파도가 부드럽게 밀려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해변에 있는 검은 바위를 찰싹 때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가끔은 거대한 불 위에 간신히 얹혀있는 가마솥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완전히 고요하고 완전히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면,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의 깊은 한숨 소리가 밖에서 들리기도 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소리가 현실 속의 불안한 평화에 방해가 됐다. 개들은 집 아래로 기어들어가 자고 있었고, 닭은 나무 위에 앉아있었다. 나무는 혼자서 움직였는데, 뿌리가 뽑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듯이 움직였다. 다시 귀를 기울이자 뭔가 내 배 위로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독을 머금은 창을 가진 녀석들과 침 속에 치명적인 독을 담고 있는 놈들이었다. 사냥하는 소리와 사냥 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잡아 먹히기 직전에 처절한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잡아먹는 놈의 만족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밤, 난 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 두 손이 온 몸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두 사리 사이, 부드럽고 촉촉한 곳에 그 손길이 닿아 두 입술 사이로 쾌락의 탄식이 새어나올 때까지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난 아무에게도 이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