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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어머니의 자서전

1-2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by rainbowbrite 2014. 7. 29.




어느 날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접시 하나를 깨뜨렸다. 유니스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단 하나뿐인 본 차이나 접시였다. “미안해요.”라는 말이 차마 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녀가 접시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 슬픔은 처절했고, 감당치 못할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그녀는 두터운 뱃살을 부여잡으며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가슴을 내리치기도 했다.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니 신화나 동화에서 나올 듯한 수맥이 터져 흐르는 것 같았다. 어렸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 접시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걸 눈치채고, 절대 만지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했었다. 나는 그 접시를 바라보면서 거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뭔지 궁금했다. 그 그림은 수풀과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의 가장 옅은 색조를 가진 꽃으로 가득한 넓게 펼쳐진 들판이었다. 하늘에는 활활 타오르는 건 아닐지라도, 밝게 빛나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 엷은 구름도 하늘을 장식하는 것처럼 넓게 퍼져있었다. 불길한 징조처럼 어둡게 몰려오는 그런 구름이 아니었다. 그 그림은 그저 따사로운 날, 꽃과 풀이 만발한 들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그림에는 풍요로움과 행복, 평온한 분위기가 비밀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황금색으로 ‘천국’이라는 낱말이 쓰여있었다. 당연히 진짜 천국의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영국의 전원(田園)을 이상적인 그린 모습이었다. 그러나 난 몰랐다. 영국의 전원(田園)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난 몰랐다. 유니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그림에 있는 모습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걱정, 근심, 가난이 없는 삶에 대한 비밀스런 약속을 보여주는 그런 천국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접시를 깨뜨렸을 때, 유니스는 그런 모습으로 울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 후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 건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이미 미안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는 이미 죽고 없었으니까. 아마 그녀는 천국에 갔겠지. 그리고 천국은 그 접시에 그려진 약속을 이뤄주었겠지. 내가 그 접시를 깨뜨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자, 그녀는 죽은 우리 엄마를 저주했다. 아버지를 저주하고, 나를 저주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난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말로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햇빛이 강하기 비추는 돌 무더기 위로 나를 데려가 무릎을 꿇게 하고, 큰 돌을 두 손으로 들고 머리 위까지 높이 쳐들게 했다. 그녀는 내 입에서 “미안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나에게 벌을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난 입술 밖으로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나와 내 가족들에게 저주를 퍼붓다 못해 진이 빠져 멈출 때까지,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어째서 이렇게 벌을 받았던 기억에 내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걸까?그녀와 나의 모습은 마치 사냥꾼과 사냥감,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크고 강력하고 힘이 셌지만, 나는 작고 무력하며 나약한 것이었다. 유니스는 땅과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내 앞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입술 사이에 어떤 말이 흘러나오지만 인간은 아닌 어떤 분노한 존재로 변신하는 것 같았다. 얼기설기 얇게 만들어진 면 드레스는 상체와 하체의 색깔과 무늬가 서로 달랐고, 빗질도 하지 않고 감지도 않은 그녀의 머리는 더 오랫동안 빨지 않았을 것 같은 두건이 감싸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한 때는 깨끗한 새 옷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더러워지고 낡았다. 하지만 드레스에 때가 껴서 더러워지자, 전에 없던 새로운 색깔의 옷이 되었다. 매일 발을 닦는 걸 보면 그렇게 더러운 여자는 아니었지만, 옷에 낀 때는 그녀의 드레스를 볼품없이 만들어버렸다. 

우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날은 화창했다. 바다에선 남자들이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화창한 날이었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잡지는 못했다. 그녀의 세 아이들은 빵을 먹고 있었는데, 안쪽의 보들보들한 부분을 구슬처럼 돌돌 말아 무릎 꿇고 있는 나에게 던지며 놀려댔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람도 전혀 없었다. 파리 한 마리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는데, 이따금씩 내 입술 주위에 앉기도 했다. 너무 익어버린 빵나무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소리는 마치 주먹으로 부드러운 살덩이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들이, 이 모든 것들이 또렷이 기억난다. 어째서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 걸까?

무릎을 꿇고 있을 때, 나는 거북이 세 마리가 집 아래에 난 틈으로 들락날락 하는 걸 봤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반해버렸다. 가까이에 두고 남은 평생을 그 거북이들하고만 얘기하며 보내고 싶었다.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거북이 세 마리를 데려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집어 넣었다. 그곳에선 거북이들이 원하는 대로 드나들 수도 없었고, 철저히 나를 의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나뭇잎과 야채, 그리고 작은 조개 껍데기에 물을 담아 가져다 줬다. 검은 색 등껍질에 희미하게 새겨진 동그랗고 노란 무늬, 길다란 목, 의심 없는 눈망울,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목을 길게 빼는 모습을 보고 싶어도, 등껍질 안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불러도 나올 기미조차 없었다. 난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강바닥에서 진흙을 퍼다가 머리가 나오는 구멍을 막고 바싹 말렸다. 그렇게 거북이들이 사는 곳을 덮어버리고 나는 며칠이 되도록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거북이들이 마음 속에 떠올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봤지만, 이미 거북이들은 모두 죽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