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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어머니의 자서전

1-3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by rainbowbrite 2014. 7. 30.




나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빠의 바람이었다. 그때는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유니스의 딸들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학교에 보내달라는 건 뜻밖의 요구사항이었다. 난 아빠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그런 요구를 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나 같은 애는 결국 학교에 가봤자 별볼일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하면서 내게 무엇이 없는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내게 비참함 만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집을 떠나 저 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내 치마와 블라우스의 감촉을 정확히 기억한다. 촌스러웠지만 그래도 새 거였다. 초록색 치마와 베이지색 블라우스 교복이었는데, 색깔과 스타일은 어딘가 있을지 모를 다른 학교의 교복을 흉내 낸 것 같았다. 나는 두꺼운 갈색 천으로 만든 신발과 갈색 면 양말을 신었다. 아버지가 가져온 것이었지만, 어디서 구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디에 가면 이런 신발과 양말을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다라는 것은 처음 신어본다고 실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새 신발과 양말 때문에 발이 아파서 부어 오르고, 물집이 생겨 터지기 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익숙해질 때까지 신어야 했다. 그리고 내 발은 잘 적응했다. 그날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화창한 날이었고, 하늘엔 구름도 조금 떠 있었다. 한쪽은 햇빛이, 또 다른 한쪽은 구름이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불꽃나무에선 푸르른 입사귀가 피어 오르고, 붉은 꽃 봉우리가 만발했다. 쭈글쭈글하고 노란 케슈 열매, 라임열매와 아몬드의 내음, 그리고 커피의 향내도 밀려들었다. 유니스의 치마가 날려 내 얼굴에 닿을 때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나는 냄새가 나를 자극했는데, 나는 그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내게 나는 냄새를 맡을 때면, 그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잔잔한 강에선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서였을까. 나뭇잎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길을 따라 학교로 가는 여정에서 눈, 코, 귀의 감각이 깨어났다. 큰 길에 다다르자 나는 새 신발을 신은 발을 그 위로 내디뎠다.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도로는 작은 돌과 딱딱하게 굳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불편했는데, 바닥 표면이 고르지 않을 땐, 발이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 길은 내 앞으로 쭉 뻗어있었고, 저 멀리 굽은 길이 보였다. 계속 걸어 그곳까지 가니, 또다시 쭉 뻗은 길이 나왔다. 또 굽은 길이 나왔지만 그 길을 돌기 전에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한 개의 문과 네 개의 창문을 가진 작은 건물이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있었고,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지붕 위에 있는 기둥을 오르고 있었다. 세 개의 긴 책상이 열에 맞춰 앞뒤로 놓여있었고, 큰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책상을 마주보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뒤쪽엔 큰 지도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그 지도 위쪽에는 “대영제국”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배운 단어였다. 

교실에는 온통 남자아이들뿐이었다. 나는 고학년이 될 때까지 여자 아이와 짝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두려움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다. 내가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은 것만큼 어린아이가 두려워할 만한 게 또 있을까.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엄마는 죽었다. 그리고 몇 년 째 같이 살고 있는 여자는 우리 엄마도 아닐뿐더러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유니스였다. 아버지도 내 곁에 없었고, 언제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지 기약도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게 밀어닥친 상황이 두렵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때 두렵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거짓이라면, 난 그 이후로도 내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거짓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학교에 등교했던 기억을 지금 정확하고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꾸며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게,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때 일어났던 일들은 내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그리 의미 있는 일도 아니었고, 어떤 맥락을 가지고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 벌어진 일들 속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우리 선생님은 감리교 선교원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프리카 출신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심지어 자기를 혐오하는 증상도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온몸에 걸치고 있던 절망은 마치 옷이나 망토 같기도 했고, 자신의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절망이 우리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학생들끼리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계속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 반에는 나를 제외하고 남자아이 일곱 명이었고, 모두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나는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결은 숱이 많고 찰랑거렸다. 눈 사이가 넓은 편이었고, 양쪽 눈은 아몬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의 엷으면서도 좌우로 찢어진 입술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입술은 아니었다. 나도 아프리카 사람이었지만, 우리 엄마가 카리브 사람이었기 때문에, 순혈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카리브 사람으로 취급했다. 카리브 사람은 패배하고 전멸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정원에서 뽑혀나간 잡초처럼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패배했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카리브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입 밖으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보통은 혼잣말이었지만, 꼭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걸었다. 학교에서는 방언이 아닌 정통 영어를 썼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프랑스어 방언도 썼는데, 쓰면 안 되는 말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말할 때 울리는 소리가 점점 좋아졌기 때문일까. 나는 혼잣말을 할 때가 많아졌다. 내 목소리는 너무 달콤하게 들렸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나는 외로웠고, 어떤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얼굴만 봐도 우리 엄마라고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으니까. 우리 엄마는 죽었고, 난 아버지의 얼굴도 한동안 보지 못했다. 

나는 읽기 쓰기를 정말 빠른 속도로 배웠다. 암기력은 보통 이상이었고 아주 자세한 것까지 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누가 언제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가 워낙 독특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내가 사악한 인간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뭔가에 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오로지 선과 악에 대해서 배우기만 했지, 그것을 구분하는 판단은 언제나 틀렸다. 그리고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우리 엄마가 카리브 사람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냈다. 그때 나의 세상은 신비롭기도 하고 기쁨의 원천이기도 했다.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연약함이 내재해 있는 식물과도 같았다. 그 식물은 온갖 괴롭힘에 시달리는 식물이었고, 아침마다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희미한 빛으로 시작해 밤마다 어둠이 시작되면서 갑작스레 끝나버리는, 낮에만 활동하는 식물이었다. 나는 회색 빛의 얼굴을 가진 하늘을 사랑했다. 물을 머금고 젖어 있는 흐린 하늘은 학교에 가는 내내 날 따라다니며 부드러운 화살처럼 비를 뿌려 주었다. 혹독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막아주지 못하는 짙푸른 얼굴을 가진 하늘도 사랑했다. 내 피처럼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뜨거운 열기도 사랑했고, 크기가 커야만 아름답다고 말하는 듯이 (어떤 줄기는 나무의 몸통처럼 거대했다) 많은 열매를 맺으며 거침없이 자라는 나무도 사랑했다. 나는 나뭇잎이 서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어떤 나무인지 구분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삼나무에 맺힌 하얀 꽃들이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고요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그 찰나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꽃잎에 기운이 살아있었고, 분홍색과 흰색이 입맞추듯 어우러졌지만, 하루 만에 시들고 망가져서 색이 바래버리자 내 눈에 거슬렸다. 나는 물길이 바뀌어 작은 호수가 되어버린 강을 사랑했다. 제방에 앉아서 한 가족의 새들이 날아가는 것과 개구리가 알을 낳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두운 하늘이 파랗게 변하고, 그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는 광경과 저 멀리 있는 산과 내 앞에 있는 호수의 중간에 있는 바다에 비가 뿌리는 모습도 지켜봤다. 나는 여기에 앉아서 처음으로 엄마가 나오는 꿈을 꿨다. 내 몸을 감싼 돌 무더기 사이에서 잠이 들었고, 내 작은 몸은 깃털처럼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길고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운의 아랫단이 바로 발꿈치까지 내려와 있었다. 보이는 건 엄마의 발꿈치뿐이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사다리를 내려오고 있었지만, 발꿈치 위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엄마의 발꿈치, 그리고 가운의 아랫단이 전부였다. 처음엔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게 다가오는 엄마의 발꿈치를 본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잠들기 전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고,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