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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by rainbowbrite 2020. 11. 3.

두 달 후면 아버지가 떠난지 딱 2년이 됩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수요일, 목요일만 돼도 한 주가 다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주말에 아버지의 손자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금방 또 월요일이 됩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땐 항상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기계적으로 살고 있는 건지 의심이 돼요. 잘 살고 있다고, 행복하다고 느낄 땐 시간이 지금보단 천천히 갔던 것 같아서요. 그래도 꾸역꾸역 살지 않고, 하찮은 삶 속에서도 의미를 찾기 위에 발버둥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잘 살아내는 것이 마치 엄청난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연히 아버지도 그 싸움을 싸우셨겠지요. 아주 치열하게 싸우고 버티셨겠지요. 사실 전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아버지를 무시하고 싶었어요. 이게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불안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려고 애썼습니다. 아버지도 어른이고, 아버지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가 있으니 나는 내 삶에만 신경쓰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좀 건방진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는 않았어요. 무시한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거였죠.

오히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사진들을 보며 이때 아버지는 몇 살이었을까 계산을 해보고 내가 그 나이 때엔 어땠는지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이게 참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스물 네 살에 아버지가 되었고 저는 서른 한 살에 아버지가 되었으니 저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버지는 참 젊게 느껴집니다. 사진 속에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그때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어떤 고민을 하며 살고 있었을지 생각만 해 볼 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전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 괴로움의 정체는 뭐였는지, 사실 지금도 헷갈립니다. 슬픔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그걸 감당할 나에 대한 걱정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문상객들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왜 잠깐이라도 맘 편하게 살 수가 없는 건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런지,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나도 결국은 아버지와 같은 운명이 될 수밖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숨이 막힐것 같았습니다. 고모들은 저에게 아버지를 살려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주저앉고 말았어요. 저는 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든 저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이해받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저는 저를 미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손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그냥 자기 삶을 잘 살고 있다면 저는 그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심이 될 것 같았어요. 아버지도 혹시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문제와 상관 없이,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내가 잘 살아주기만을 바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조금은 맘을 편하게 먹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버지도 그걸 더 바라지 않을까? 제 자식들을 두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마치 아버지가 어린 나한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전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옆에 없는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아빠 걱정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 것 처럼요. 

그래도 아버지께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 살펴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너무 외롭게 한 것 같아서 후회가 된다고.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한번 꼭 안아보고 싶어요. 왜 나에게 기대지 않았느냐고 화도 내고 싶고...

혹시라도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잘 살겁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거고, 울쩍한 날이 오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저 자신을 잘 돌볼 겁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 아버지 아들은 그렇게 잘 지낼 겁니다.

그곳에서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없이, 평안을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첫째 호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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