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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나를 고민하게 하는 아이들

by rainbowbrite 2020. 11. 8.

오랫동안 함께 공부를 해도 실력이 좀처럼 잘 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냥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도 있고, 5분, 10분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어떻게 도와주어야할지 정말 어렵다. 정말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럴 땐 정말 좌절감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으로써 능력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학부모님과 상담을 해서 퇴원을 권유할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만 그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당신의 자녀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서. 그건 정말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래도 여기서 공부하길 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계속 해 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자기 자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자녀를 계속 맡기고 싶어하신다. 

 

지난 금요일에도 한 학생 학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내가 보내드리는 테스트 성적 때문에 아이가 집에서 많이 혼났다고 해서 학부모님과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다. 부모님은 너무 실망스럽다는 말씀을 하셨고, 난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잘못된 학습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는 것. 

아이가 지각이나 결석 없이 시간 맞춰 잘 오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좋은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아직은 좀 더 많은 기회와 시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한 번에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면 한번 더, 그래도 못하면 한 번 더. 

 

“언어에는 질서가 있어. 그래서 무작정 공부하고 외울 필요가 없어. 그 질서를 잘 배우면 점점 쉬워져.”

 

“문장을 암기할 때 항상 질서를 생각해야 해. 기계처럼 다섯번 썼다고 공부가 끝난 게 아니야. 네가 스스로 말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야. 공부할 수 있는 문장의 수가 적어도 되니까 꼭 이렇게 해봐. 처음엔 몇 개 못 해도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난단다.”

 

요즘 내가 많이 하는 말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개떡같이 가르쳐도 찰떡같이 잘 알아듣고 스스로 잘 한다. 잘 하는 아이들을 잘 가르쳤다고 좋은 선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 선생님 때문에 공부한다’ 같은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만들어주고 꾸준히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게 선생의 자질이 아닐까 싶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영어뿐만 아니라 성숙의 즐거움도 가르칠 있는 선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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