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서평

by rainbowbrite 2023. 1. 26.

-2023년 1월 26일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지은이인 나종호 선생님 본인이 환자를 진료하며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정서적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리고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경험과 생각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나종호 선생님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고 있는데, 자살 유가족에 대한 트윗에 공감이 되어, 나 또한 자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트위터에 언급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어려움을 밖에 꺼내 놓는 일도 애도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살 유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죄책감이다. 왜 그지경이 될 때까지 가족으로써 역할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두 번째는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의 원망이다. 이 원망은 죄책감을 증폭시키고 죄책감을 넘어 자학의 단계로까지 끌고 간다. 슬퍼하고 애도할 자격도 없는 죄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선생님의 트윗에는 진심이 있었고 나 나름대로의 애도를 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책에서 언급된 환자의 사례에서도 나종호 선생님이 가진 환자를 향한 그런 마음이 드러난다.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할 때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환자의 증상뿐만 아니라 그 환자가 가진 사연과 정서적 어려움을 겪기까지의 과정까지도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며 나종호 선생님의 환자는 복이 많은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조현병으로 인해 나도 보호자로써 나도 정신과 의사와 정신과 약물 적잖이 접했다. 그런데 내가 접한 정신과 진료실은 선생님이 책에서 언급한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번은 아버지의 공황발작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의사에게 여러가지 증상을 말하고 각종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아무런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고, 나는 이게 공황발작이라고 말했다. 이미 여러번 겪은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데, 의사는 이상 소견이 없고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왜 이런 일로 응급실에 오느냐는 표정과 말투가 지금도 선하다. 이 책에는 정신과 응급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정신과적 응급상황' 이 분명히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응급상황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없는 것 같다. 

 

   트위터에서 가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상담이 아니라 문진이다. 정신과 의사는 당신의 사연이나 마음에 큰 관심이 없다. 의사가 관심 있는 것은 당신의 증상과 병명, 그리고 처방이다. 그리고 그 처방으로 신체적 증상이 완화되면 그것을 치료라고 한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 일이 있었는데, 피해망상과 환청 증상을 겪으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어하셨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느끼셨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렇게 혼자 견디고 버티다 이상징후를 발견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였다. 어머니께 피해망상과 환청 등 조현병으로 의심될 만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개월 버티다 어머니를 억지로 끌고 진료를 받으러 갔다. 각종 검사를 하고 의사와 처음 만나는 시간, 나는 어머니께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과 어머니가 겪으셨을 정서적 어려움에 대해서 의사에게 얘기하려고 했다. 의사는 듣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는 말보다는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처방을 할테니 어떻게 약을 먹으라는 말씀을 하셔서 약에 대한 설명을 요청드렸지만 '그냥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드세요' 라는 말이 끝이었다. 아버지의 약물 의존 경험을 했던 터라 당연히 걱정이 되었지만, 더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이런 진료 경험 때문에 그런지 정신과 의사가 쓴 책, 특히 '마음', '공감' 이런 문구가 들어간 책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뇌와 신경 전달 물질, 약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마음', '공감' 이라는 말을 한다는 게 기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에 별로 관심도 없고 뇌의 이상으로 정신질환이 생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뭐하러 마음이라는 말을 할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종호 선생님의 이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도 처음엔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트위터에 자살과 자살 유가족에 대해서 언급하신 내용이 고마워서, 그 고마운 마음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은 어찌보면 정신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의무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환자의 마음을 살펴주는 의사로 남아주시길 바라본다.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0) 2023.05.24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요?  (0) 2023.02.02
영화 [덩케르크]와 이태원 참사  (0) 2023.01.28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0) 2023.01.26
악몽  (0)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