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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영화 [덩케르크]와 이태원 참사

by rainbowbrite 2023. 1. 28.

   지난 2022년 말, 이태원 참사에서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 이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봤다. 전쟁터같은 그 참사 현장에서 친구를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그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까. 심리상담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도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이나 할 수 있었을지, 그런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왜 친구는 죽고 나만 살아남을까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했을 것 같다. 슬퍼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는 마음으로 아이가 혼자 자책하며 끙끙 앓았을 생각을 하니 너무 안타깝다. 

   

영화 [덩케르크] 마지막 부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군에 끝까지 밀려 피말리는 철수 작전 끝에 병사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영국 땅을 밟게 된다. 그리고 힘없이 지나가는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한 노인이 담요를 건넨다.어떤 병사는 그 노인이 자기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그 노인의 시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마 '우리를 패잔병 취급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노인이 연신 '수고했다, 고생했다' 말하며 담요를 나눠주자, 병사는 '우리는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라고 말한다. 노인의 대답은 '그거면 충분하다' 였다. 그리고 노인은 다른 병사의 얼굴을 만지며 다시 '수고 했다'고 말한다. 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아온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존하기 위해 각자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온 그들이다. 전투에선 패했고,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수 없이 봤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왔다. 패잔병이고, 도망자이고, 혼자만 살아온 자들이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할 거라고 두려워하며 창 밖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생환한 그들에게 환호하며 맞아주고 시원한 맥주를 건네준다.  

 

 

"살아 돌아온 이들을 위한 찬사."

 

많은 인파들이 나와 그들을 환영해주고, 철수 작전이 '성공'했다고 쓰여진 기사를 읽었을 때, 아마 병사들은 다시 힘이 생겼을 것이고, 생존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갈 힘이 생겼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적군을 더 많이 죽이는 것도 그들의 임무가 아니다. 살아 돌아오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임무다. 그 병사들은 임무를 완수했고, 환영 받아 마땅하다. 

 

전쟁과 다름 없는 그 현장에서 살아 온 이군에게도 그런 찬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 이O현 군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