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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by rainbowbrite 2023. 1. 26.

픽션인 듯 픽션 아닌 픽션 같은 너.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스토리라고 할 수도 없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나 사실이라기보다는 경험 속에 드러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작가는 이 글은 멋있게 쓰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타인이 어떻게 보는지도 상관이 없고, 통념도 의미가 없다. 심지어 그녀가 사랑했던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조차 이 글에선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그 사람의 질투는 나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증거라는 생각에,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말 중에서 질투의 증거로 생각되는 것은 탐욕스럽게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지배한 지독한 사랑이라는 감정, 집착스러운 열망,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까지, 자신을 지배했던 한 남자와의 시간을 마치 해부하듯 직면한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가장 어렵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신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한 줄 한 줄이 깊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