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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뒤늦은 '나의 해방일지' 리뷰

by rainbowbrite 2023. 5. 31.

  박해영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절절한 마음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 나이든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라고해서 비난을 많이 받았었는데, 누가 어떤 사랑을 하던 뭔상관? 하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때는 왠지 논란이 되는 작품을 그렇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안 보고 넘어갔는데, 종영 이후에 좋은 평가가 많아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이 '로맨스'라고 비난을 했는데, 로맨스의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의 아저씨'는 그냥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주인공인 동훈과 지안 모두 고통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이었을 것 같다. 누가 보더라도 번듯해 보이고 다 가진 것 같은 동훈, 그에게 고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알바를 하며 연명하듯 살아가는 지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도, 심지어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각자의 삶을 알아가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다. 나이든 남자와 어린 여자의 선을 넘나드는 가슴 떨리는 로맨스가 아니라! 

 

   어쨌든 그 드라마를 보고 박해영 작가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생겼고 '나의 아저씨' 의 전작인 '또 오해영'도 바로 정주행했다. 이건 너무나 좋았던 로맨스였고. 

 

   그리고 몇년만에 새로 나오는 작품 '나의 해방일지'. 제목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해방'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해방'이라는 말을 제목에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기대가 컸다. 드라마를 두 번이나 정주행한 지금 시점에서 이 드라마는 나한테 인생 드라마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깊이가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드라마를 처음 볼 때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드라마가 방영할 때는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면서 언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중반이 넘어가고 후반으로 가면서도 이야기는 언제 시작되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드라마가 끝났다. '나의 아저씨.'나 '또 오해영' 처럼 뭔가 극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인물이 전부다. 그 사람 자체가 이 드라마의 전체다. 그래서 줄거리가 없다. 이야기할 건 그 인물밖에는 없다. 그리고 인물의 마음의 모양과 그 마음의 모양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게 전부인 드라마였다. 그게 삽질이든 해방이든. 

 

  그렇다면 해방이란 뭘까. 해방클럽 회원들이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꽤 규모가 큰 회사를 다니면서도 쉽게 섞여들지 못하는 사람들. 통념에 얽매여 사는 게 너무 불편한 사람들, 남들이 다 하는 동호회 하나 가입할 만도 한데, 죽어도 하기 싫은 사람들이 만든 해방 클럽. 그리고 해방클럽 회원들은 자기의 마음들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위로와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처럼. 

 

   너무 모나지 않고, 평범하게, 무난하게 사는 것, 그리고 남들이 추구하는 것을 나도 자연스럽게 추구는 세상에서 '나를 찾는 것'이 곧 '해방'이라는 말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파괴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에서 '나의 해방일지'는 너무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인 나도 이해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11화 미정의 대사.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난 궁금한 건 하나 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거야." 

 

https://youtu.be/4GPSJIYm8NQ?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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