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

소설 [우리 없는 세상] 감상평

by rainbowbrite 2023. 6. 22.

   자살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주변에서 실제로 접하는 일이기도 하고 뉴스 기사에서는 거의 매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기도 하지만, 마치 그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내놓지 않겠다고 다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외면 받는 주제다. 나에게 멀지 않은 주제이기도 한데 (당장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몇년 전에는 SNS 에서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뮤트해 놓기도 했었다. 그 두 글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괴로운 때였기 때문에. 

 

   이 책을 알게 된 건 WPI 센터 모임 뒷풀이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연구원 분을 통해서였는데, 본인이 기획과 번역 그리고 출판까지 '1인 출판'을 형식으로 책을 내셨다고 말씀해주셨다. WPI 프로파일 M자라고 본인을 소개해주셨는데, M자가 이렇게 1인 출판으로 책을 낸다는 건 단지 책을 내는 것 자체 보다도 그 책에 대한 애정이 엄청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책 제목을 여쭤보고 바로 장바구니 행.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1인 출판 얘기를 듣고 좀 놀라기도 했는데, 나도 2-30대 때 국내에 거의 소개가 안 된 자메니카 킨케이드(Jamaica Kincaid)의 소설에 푹 빠져서 1인 출판으로라도 책을 내보고 싶은 마음에 혼자 번역도 하고 1인 출판 강의를 듣기도 했었다. 여러 출판사에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었지만, 잘 되진 않았다. 연구원님도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신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일을 끝까지 잘 해내신 것 같아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M자의 삶이란.. 때로는 남들이 몰라주는 뭔가가 눈에 막 들어오기도 하고, 자기가 애정을 쏟는 일엔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는 거. 참으로 세상의 필수요소 아닌가! 

 

[우리 없는 세상]

 

   [우리 없는 세상] 은 청소년 자살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고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째서 삶이 지속되어야하는가'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인 제러미와 멜로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중반부까지는 만약 제러미나 멜로디 같은 아이들이 내 주변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마음을 읽어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은 부담감 같은 걸 느꼈는데, 이후로는 그냥 이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멜로디는 자살을 시도했다는 오해를 받고 친구들 사이에서 '죽음 희망자'라고 불린다. 멜로디는 누구도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기는데, 제러미는 그런 멜로디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제러미의 삶도 쉽지가 않은데, 동생의 죽음 이후 가족들과는 거의 단절된 상태로 지내게 된다.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멜로디였고. 그 둘은 자살을 결의하고 다리 위로 올라간다. 뛰어내리려고 하는 제러미를 멜로디는 말려보지만 결국 제러미는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고 만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 소설에는 몇 개의 죽음이 등장한다. 사형제도가 있는 지역에서 그들의 사형 집행을 막아보려는 엄마 비키, 친구의 죽음을 막아보려는 멜로디, 동생의 죽음을 경험한 제러미, 그리고 다리 위로 함께 올라간 멜로디와 제러미.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 슬픔, 그리고 수용의 이야기를 여러분도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