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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연극 [라스트 세션] 후기

by rainbowbrite 2022. 2. 22.

트위터에서 트친 한 분이 연극 포스터 한 장을 올리셨다. 연극 [라스트 세션]의 포스터였느네, 한 눈에 들어온 이름이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인 C.S 루이스였다. 환상 문학인 나니아 시리즈 중 [사자와 마녀와 옷장] 을 너무 좋아해서 항상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도대체 이 연극은 뭐지? 하는 마음에 정보를 찾아보았다. 무신론자인 프로이트와 유신론자인 C.S 루이스의 대화로 이루어진 연극이라는 걸 보고 너무 취향 저격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등장인물이 C.S 루이스라는 점, 그리고 요즘 핫한 오영수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너무 끌렸다. 

 

이 대화의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프로이트가 젊은 루이스를 집으로 초대해 대화가 시작된다. 사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대면한 적은 없다. 연극은 두 인물이 만났다면 이런 대화를 했을 거라는 가정으로 이루어진 픽션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남긴 저작들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완전한 픽션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무신론과 유신론의 설전은 점잖게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둘 다 각자의 믿음에 근거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같은 현상을 보면서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에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둘은 사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스트 세션]에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대화를 쌓아 나간다. 그리고 뜨거운 대화를 이어간다. 전쟁, 사랑, 욕망, 고통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더구나 수십년의 경륜이 묻어나는 오영수 배우와 젊은 패기가 있는 이상윤 배우의 케미스트리도 아주 좋았다. 80세를 바라보는 배우의 열정과 안정감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연극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화는 90분 안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방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좀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소재를 짧은 시간에 다뤘기 때문에 그런지 더 깊이있게 나아가진 못했다. 도덕률은 인간이 학습을 한 것인가, 아니면 신에 의해 부여된 것인가 라는 주제 만으로도 90분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전에 인프피 카페에서 비슷한 주제로 사람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때 C.S 루이스의 책을 근거로 반박을 했었다. 어떤 회원분이 연극 대본의 형태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친했던 다른 분이 학생 2가 되어 의 견을 냈고, 내가 학생 3이 되어 또다른 반박을 했는데, 지금 찾아서 읽어보니 은근 재밌게 놀았구나 싶다. 

 


 

(학생2가 말을 마치자 주변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 때 갑자가 학생3이 앞으로 나가 사티레브와 대화를 시작한다.)

 

학생3: 당신께서 너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쏟아내 어디서부터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우리는 당신의 성장과정을 잘 모르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잘 성장해 지금 이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그렇게 내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죽는 다는 것을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요. 중간 과정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믿느냐라고 물으셨지요? 그걸 증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겠네요. 

 

그렇다면 진화도 하나의 성장의 과정일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의 답은 'no'입니다. 진화라는 것은 한 생물의 성장 과정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싱링크는 그리 중요한 개념도 아닙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든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든 우리는 같은 현상을 바라보고 누구는 진화라고 하고, 누구는 섭리라고 하는 거니까요.

 

사고의 능력을 갖게 된 이후로 인간은 끊임없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죠. 

 

첫째는 유물론적 관점입니다. 이 관점을 가진 이들은 물질과 공간은 우연히 생긴 것으로 늘 존재해 왔지만, 그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처럼 사고할 수 있는 생물은 고정된 방식으로 움직이던 물질이 일종의 요행으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합니다. 천분의일의 우연으로 무언가가 태양과 부딪쳐서 행성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천분의 일의 우연으로 그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생명에 필요한 화학물질과 적절한 온도가 마련됨으로써 지구에 있던 몇몇 물질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많은 일련의 우연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울 같은인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종교적 관점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주의 배후에는 '정신'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무언가는 지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선호하는 존재입니다. 그 무언가는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모르는 목적을 위해, 또 부분적으로는 어쨌든 자신과 닮은존재를 만들려는 목적을 위해 우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이 둘 중에 어느 관점이 옳은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과학이 완벽해져서 전 우주에 있는 것들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해소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을 테니까요.

 

또한, 인간의 진화 과정을 가지고 신의 유무를 증명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과학으로 우리는 현상을 관찰합니다만 그 현상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과학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과학의 역할이 그렇다는 겁니다.) 외계인이 인간을 납치해 실험실에서 관찰한다고 했을 때, 우리의 신체 구조 등은 알 수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도덕률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진화론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과 악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옳습니다. 선의 결핍이 악이라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개념이죠. 선이라는 개념의 반대급부로 악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돌맹이가 선하지 않다고 해서 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인간에게는 다툼이 있습니다. 다툼이란 상대의 그름을 밝히는 행동이므로 둘 사이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하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면 다툼은 무의미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룰이 합의되지 않으면, 선수에게 파울을 선언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니까요.

 

이러한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을 우리는 '자연법'이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모든 물체가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에게 그 법을 따를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법은 다릅니다.

 

즉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첫째, 인간은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 즉 공정한 처신이나 예의나 도덕이나 자연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돌이나 나무 같은 것은 그야말로 돌이나 나무일 뿐, 돌이나 나무가 자기 정원에 맞지 않는다고 '틀렸다'라고 하거나 '나쁘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유일하게 한없이 선할 수도 있고, 한없이 악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식물이나 자연물 등은 일정한 법칙에 지배를 받고 그 법칙에 완전이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도덕법이나 자연법이 존재하지만(인간이 만들어낸 법칙도 아니죠) 인간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존재입니다.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따라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따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번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진 이 ‘권한’은 우주 밖에 있는 어떤 ‘정신(mind)’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은 아닐까? 이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건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이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