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

C.S 루이스 [헤아려본 슬픔] 상실에 관하여

by rainbowbrite 2022. 2. 28.

'A Greif Observed' [헤아려본 슬픔]의 원제다.

자신이 느끼는 이 슬픔에 대해서 고통스럽게 들여다 본 그의 마음이 책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C.S 루이스는 이 책의 말미에 이 글을 노트에 끄적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끄적이는 수준의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기가 가진 슬픔을 표현하고 배출하는 것으로 그 시간들을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목적으로 공책을 새로 사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록은 나를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며 감정을 배출하는 출구로서, 어느 정도 좋은 역할을 하였다."

C.S 루이스는 내가 사랑하는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자 당시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였다. 평생을 집필과 강의를 하며 독신으로 지냈던 C.S 루이스는 조이 데이빗멋(Joy Davidman, 헤아려본 슬픔에서 H로 지칭되는 그의 아내) 을 알게 된다. 미국인이었던 그녀는 빌 그레셤이라는 미국 소설가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남편의 부정으로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르기 직전이었다.

C.S 루이스와 조이 데이빗먼은 서신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았고, 그녀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 교류했다. 조이는 1953년 두 아들과 영국으로 이주하였고 1954년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그녀는 영국에서 계속 거주하길 원했지만 1956년 영국 정부가 비자 연장을 허락하지 않자 루이스는 그녀가 시민권을 얻도록 돕기 위해 결혼을 하게 된다(요즘 말로 치면 마치 계약 결혼과 같은). 목적이 있는 결혼이었기에 둘은 별거 생활을 이어갔다. 1957년 조이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나게 되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동안 난치성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새로운 아름다움과 새로운 비극이 내 삶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사이에 얼마나 이상한 종류의 행복과 즐거움이 있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 중 하나입니다. 조이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그 끝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조이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루이스가 일기에 쓴 글)


그때 루이스는 자신이 조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루이스는 성공회 신부이자 친구의 주관으로 조이의 병실에서 그녀와 다시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게 된다. 암의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다가 조이는 1960년 7월 사망하게 된다. 약 3년 간의 결혼 생활이 끝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 [헤아려본 슬픔]은 사랑하는 아내 조이를 잃은 C.S 루이스 자신의 슬픔에 대해 써내려간 글이다.

너무나 짧은 결혼생활이었고, 결혼 생활의 대부분은 조이의 투병으로 기쁨과 고통이 공존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온 이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그의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 내용에 대해선 설명할 게 없다. 몇 구절의 인용으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 싶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나는 또다시 훌쩍이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불절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또한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처음엔 H와 내가 행복했던 장소들, 우리가 자주 갔던 카페나 좋아했던 숲을 가기가 몹시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즉각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충돌사고를 겪은 비행사를 가능한 한 빨리 창공으로 다시 내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혼자라로 해서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다른 곳보다 그곳에서 더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전혀 장소에 구애되지 않는 문제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태를 묘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과정'이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닌 역사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임의로 어느 지점에서 그 역사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슬픔은 여전히 두려움처럼 느껴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중간한 미결 상태 같기도 하다. 혹은 기다림 같기도 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은 삶이 영원히 암시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을 가치 없어 보이게 한다. 나는 차분히 안정할 수가 없다. 하품을 하고 몸을 뻗대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시간밖에 없다. 거읜 순수한 시간, 그 텅 빈 연속만이 있는 것이다.


책을 사서 읽으면서 분명 이 책을 읽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 책장 구석에서 구판을 찾아냈다. 오늘도 출판계에 이렇게 기여를 한다.

나 왜 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