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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음산한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아빠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침이 밝았다. 나는 거짓 천국에서 잠이 깼다. 거짓 천국에서 나는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이곳은 내가 항상 알고 있던 모습과 똑같았다. 어떤 것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 겸손함과 거만함이 공존하고, 생명이 충만함과 동시에 죽음도 넘쳐나는 곳이었다. 어떤 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빠의 아내는 내게 혼자 씻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녀에게서 다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외모와 내게 풍기는 냄새는 나를 모욕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그때 나는 지금의 내 방식대로 반응했다. 어떤 것이든 미워하라고 강요 받은 것을 난 사랑했다, 그것.. 2014. 8. 26.
1-5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아빠는 교도관 제복을 입고 나를 데리러 왔다. 이런 복장으로 나타난 건 아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경찰로 근무하던 세인트 조셉 St. Joseph 에서 로조 Roseau 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나는 아빠가 올 거라는 얘기를 미리 들었다. 하지만 기대하진 않았다. 학교에서 내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 끝자락에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를 보고 놀랐지만, 모른 척하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토록 내가 아빠를 기다렸던 이유는 아빠의 재혼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빨래거리를 가지고 내가 사는 집으로 오지 않은 것도 재혼 때문이었다. 재혼한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재혼한다는 게.. 2014. 8. 15.
1-4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내 기억으론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날은 편지 쓰는 법을 배웠다. 보통 편지는 총 여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보내는 사람의 주소, 날짜, 받는 사람의 주소, 인사말이나 안부, 편지의 본문, 마무리 짓는 말이 그것이다. 나처럼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자에게 편지 쓸 기회가 없다는 건 뻔한 일이다. 실수를 하면 맞기도 하고 폭언을 듣기도 했지만, 편지 쓰는 법을 배우고 실제로 써보면서 느꼈던 만족감은 실로 엄청났다. 그때는 편지를 쓴 사람의 불평이나 관점, 즐거움이 뭔지 전혀 관심이 없어도 그 편지를 베껴 쓰는 것이 그렇게 화나는 일은 아니었다. 너무 어렸던 나는 허영심이 칼처럼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나만의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곱 살이었던 나의 눈에 비친.. 2014. 8. 15.
1-3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나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빠의 바람이었다. 그때는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유니스의 딸들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학교에 보내달라는 건 뜻밖의 요구사항이었다. 난 아빠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그런 요구를 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나 같은 애는 결국 학교에 가봤자 별볼일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하면서 내게 무엇이 없는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내게 비참함 만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집을 떠나 저 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내 치마와 블라우스의 감촉을 정확히 기억한다. 촌스러웠지만 그래도 새 거였다. 초록색 치마와 베이지.. 2014. 7. 30.
1-2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어느 날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접시 하나를 깨뜨렸다. 유니스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단 하나뿐인 본 차이나 접시였다. “미안해요.”라는 말이 차마 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녀가 접시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 슬픔은 처절했고, 감당치 못할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그녀는 두터운 뱃살을 부여잡으며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가슴을 내리치기도 했다.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니 신화나 동화에서 나올 듯한 수맥이 터져 흐르는 것 같았다. 어렸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그 접시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걸 눈치채고, 절대 만지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했었다. 나는 .. 2014. 7. 29.
1-1 The Autobiography of My Mother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 죽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생을 살면서 내 자신과 영원 사이엔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았다. 언제나 황량하고 캄캄한 바람만이 내 등 뒤로 불고 있었다. 삶이 시작될 때 나는 이렇게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지만, 그때 난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것은 내가 남 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점점 잃어갔다는 것과, 가져본 적도 없는 것들을 점점 더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를 잃고 얻었다는 자각은 내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게 했다. 내 삶의 시점에는 얼굴도 한번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있었고, 내 삶의 끝에는 그 누구도 존재치 않았다. 나와 이 세상의 컴컴한 방 사이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평생 벼랑 끝에 서있는 것.. 2014. 7. 29.
요트를 빌려서 태평양으로 나왔어요~ 시나리오 당신과 당신 친구들은 요트를 한 대 대여했습니다. 아무도 항해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경험이 많은 선장 한 명과 두 명의 선원을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태평양을 행해하던 도중 불이 나서 요트의 많은 부분이 불탔고 싣고 있던 것들도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지금 요트는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ㅠㅠ 네비게이션과 무전기도 고장 나서 지금 위치도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장과 선원은 모두 진화를 하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육지에서 대략 3000km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게 지금으로선 최대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당신과 친구들은 아래의 14개의 물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화장실 거울2. 모기장3. 물 19리터4. 군사용 비상식량 1통5. 태평양 지도 6. 물에 뜨는 방석 하.. 2014. 3. 17.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어떤 유저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사실 토론의 주제가 뭐였는지 지금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트위터에서 토론이 대부분 그렇듯 서로는 이미 정해진 입장에서 상대를 설득하려 하다가 그게 안 되면 거기서 끝내거나 아니면 욕을 한 바가지 하거나 정신승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상하게 갑자기 영어로 멘션을 보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다만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도 상대가 엉어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영어로 멘션을 보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거 아니냐고 답멘션을 보냈다. 물론 영어로. 그렇게 흐지부지 대화는 .. 2014. 3. 14.
'러브콜'이 무슨 뜻이야? 러브콜. 스포츠나 연예기사에서 많이 보는 말이다. 대충 그 의미는 이해할 수 있다. 영입을 제안하거나 지금 소속되어있는 곳보다 더 괜찮은 조건을 제시할 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최근 기사제목을 한번 검색해 보니... 김성식 "그냥 김성식으로 살겠다"…與 복당 러브콜 거절 '기관 러브콜' 코스닥, 단기저항권 뚫고 나갈까 박해진, 中 드라마 '남자들 2' 러브콜…'바쁜 휘경이' 김성주 러브콜에 소치 여왕들 응답했다! '힐링캠프’ 김희애, 김수현 작가 러브콜에 감동 “꿈인 줄 알았다” 이런 기사들이 나온다. 연예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및 경제 기사에도 러브콜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참 간드러지는 표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다. 내가 왜 이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지는 .. 2014. 3. 6.